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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식 함상폭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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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99식 함상폭격기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 해군이 운용한 급강하 폭격기이다. 1936년 일본 해군은 Aichi D1A 복엽기를 대체하기 위해 단엽기 함상 급강하 폭격기 개발을 시작했고, 아이치 항공기의 설계를 바탕으로 1939년 12월 해군 99식 함상 폭격기 11형으로 제식 채용되었다. 이후 킨세이 54 엔진을 장착하고 연료 탱크를 확대한 22형이 개발되어 1942년부터 11형을 대체했다. 99식 함상폭격기는 태평양 전쟁 초기 높은 명중률을 바탕으로 연합군 함선 격침에 기여했으나, 전쟁 후반에는 구식화되어 가미카제 특공에 투입되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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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식 함상폭격기
개요
아이치 D3A1 아카기
아이치 D3A1, 아카기 소속
기종함상 폭격기, 급강하 폭격기
제조사아이치 코쿠키 KK (愛知航空機)
설계자고묘 도쿠이치로, 모리 모리시게, 오자키 노리오
최초 비행1938년 1월
도입1940년
퇴역1945년
주요 운용국일본 제국 해군 항공대
생산 대수1,495대 (D3A1 479대, D3A2 1016대)
파생형
명칭
일본어D3A 九九式艦上爆撃機 (규큐시키칸죠바쿠게키키)
연합군 코드명"발"(Val)
운용
주요 전투진주만 공격
인도양 해전
미드웨이 해전
과달카날 전역
솔로몬 제도 해전

2. 개발 및 발전

1936년 중반, 일본 해군은 D1A 복엽기를 대체하기 위해 11-Shi 사양의 단엽기 함상 급강하 폭격기 개발을 발표했다.[7] 아이치, 나카지마, 미쓰비시가 설계에 참여했고, 아이치와 나카지마는 시제기 제작 지시를 받았다.

아이치의 설계는 He 70 ''Blitz''의 영향을 받은 저익 배치 타원형 날개와 고정식 착륙 장치를 채택했다. 초기에는 나카지마 히카리 1 9기통 왕복 엔진을 탑재할 예정이었다. 1937년 12월 첫 번째 시제품이 완성되어 비행 시험에 들어갔으나, 출력 부족, 방향 불안정성, 급강하 브레이크 진동 등 여러 문제점이 발견되었다.

이후 두 번째 시제기는 미쓰비시 킨세이 3 엔진으로 교체하고 수직 안정판 확대, 날개 수정, 급강하 브레이크 강화 등의 개량을 거쳤다. 이를 통해 방향 안정성을 제외한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되어 1939년 12월, '''해군 99식 함상 폭격기 11형'''으로 정식 채용되었다.

99식 함상폭격기는 제식 채용 이후에도 지속적인 개량을 거쳤다. 생산 모델은 날개가 소형화되었고, 킨세이 43형 또는 킨세이 44형 엔진을 탑재하여 출력이 향상되었다. 또한, 후방 동체에 긴 핀을 추가하여 방향 안정성 문제를 해결하고 기동성을 높였다. 1942년 6월에는 킨세이 54형 엔진을 탑재한 D3A2 ('''12형''')가 테스트되었으며, 항속거리 증가를 위해 연료 탱크를 추가한 '''22형'''이 1943년부터 11형을 대체했다.

2. 1. 개발 배경

1936년 중반, 일본 해군은 당시 운용 중이던 D1A 복엽기를 대체하기 위해 단엽기 함상 급강하 폭격기에 대한 11-Shi 사양을 발표했다.[7] 아이치, 나카지마, 미쓰비시는 모두 설계를 제출했으며, 아이치와 나카지마 두 곳은 각각 시제품 두 대씩을 제작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미쓰비시는 조기에 개발을 단념했다.

아이치 설계는 He 70 ''Blitz''에서 영감을 얻은, 낮은 위치의 타원형 날개를 채택했다. 속도가 충분히 느려서 착륙 장치로 인한 저항이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으므로, 단순성을 위해 고정식 착륙 장치를 사용했다. 이 항공기는 529kW 나카지마 히카리 1 9기통 왕복 엔진으로 구동될 예정이었다.

첫 번째 시제품은 1937년 12월에 완성되었고, 한 달 뒤 비행 시험이 시작되었으며, 이후 D3A1으로 지정되었다. 초기 테스트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항공기는 출력이 부족했고 넓은 선회 시 방향 안정성이 떨어졌으며, 더 좁은 선회 시에는 스냅 롤을 하는 경향이 있었다. 급강하 브레이크는 설계 속도인 200kn에서 확장될 때 심하게 진동했고, 해군은 이미 더 빠른 급강하 속도인 240kn를 요구하고 있었다.

두 번째 시제품은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인도되기 전에 대대적으로 개조되었다. 히카리 엔진을 626kW 미쓰비시 킨세이 3 엔진으로 교체하고 재설계된 카울링을 사용하여 출력을 높였으며, 방향 안정성을 돕기 위해 수직 안정판을 확대했다. 날개는 약간 더 넓어졌고 전연의 바깥쪽 부분은 워시아웃 처리를 하여 스냅 롤을 방지했으며, 강화된 급강하 브레이크를 장착했다. 이러한 변경으로 방향 안정성을 제외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고, D3A1이 나카지마 D3N1을 이기기에 충분했다.

1939년 12월, 일본 해군은 이 항공기를 '''해군 99식 함상 폭격기 11형''' (''kanjō bakugekiki'', 일반적으로 艦爆 ''''로 약칭)으로 주문했다. 생산 모델은 약간 더 작은 날개를 특징으로 했고 746kW 킨세이 43 또는 798kW 킨세이 44 엔진을 장착하여 출력이 증가했다. 방향 안정성 문제는 후방 동체 중간에서 시작하는 긴 등쪽 핀 스트레이크를 장착하여 마침내 해결되었고, 항공기는 실제로 기동성이 뛰어나게 되었다.

2. 2. 초기 설계 및 문제점

1936년 중반, 일본 해군은 당시 운용 중이던 D1A 복엽기를 대체하기 위해 단엽기 함상 급강하 폭격기에 대한 11-Shi 사양을 발표했다.[7] 아이치, 나카지마, 미쓰비시가 설계안을 제출했으며, 아이치와 나카지마는 시제기 제작 지시를 받았다.

아이치는 독일의 He 70을 참고하여[7] 전금속제, 고정식 착륙 장치를 채택하고, 주익 양쪽 아래에 급강하 제동 브레이크판(다이브 브레이크)을 배치했다. 주익은 저익 배치를 택했고, 주익과 미익 끝은 타원형으로 설계했다. 엔진은 96식 함상 폭격기에 탑재된 히카리 1형의 개량형을 사용하기로 했다.[7]

1938년에 첫 비행에 성공했지만, 초기에는 기체 거동이 불안정하여 여러 차례 개량이 필요했다. 특히 날개 끝 실속으로 인한 갑작스러운 회전(스냅 롤)이 문제였는데, 이는 주익의 비틀림 감소와 수직 미익 전방에 핀[7]을 추가하여 해결했다. 한편, 경쟁 상대였던 나카지마의 11식 함상폭격기는 해군의 요구 변경에 따른 설계 지연으로 실격되었다. 이에 따라 99식 함상폭격기는 1939년 12월 16일 해군에 정식 채용되었다. '99식'이라는 명칭은 채용 연도인 황기 2599년(서기 1939년)에서 유래한다.

초기 시제기는 나카지마제 히카리 1형 엔진을 탑재했지만, 양산형에서는 미쓰비시 금성 44형(또는 43형) 엔진을 탑재했다.[7]

2. 3. 성능 개선

1937년 12월에 완성된 첫 번째 시제품은 초기 비행 시험 결과, 출력이 부족하고 넓은 회전 시 방향 안정성이 떨어지며, 급강하 브레이크가 설계 속도에서 심하게 진동하는 등의 문제점을 보였다.[7]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두 번째 시제기는 대대적으로 수정되었다. 우선, 나카지마 히카리 엔진을 미쓰비시 킨세이 3 엔진으로 교체하여 출력을 높였다. 또한, 방향 안정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수직 안정판을 확대하고, 날개는 스팬(날개폭)을 약간 늘리고 전연 바깥쪽에 워시아웃을 적용하여 스냅 롤 현상을 방지했다. 더불어, 강화된 급강하 브레이크를 장착했다.[7] 이러한 개선을 통해 방향 안정성 문제를 제외한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되었다.

1939년 12월, 일본 해군은 이 항공기를 '''해군 99식 함상 폭격기 11형'''으로 정식 채용했다. 생산 모델은 날개가 약간 더 작아지고, 746kW 킨세이 43형 또는 798kW 킨세이 44형 엔진을 장착하여 출력이 증가했다. 또한, 후방 동체 중간에서 시작하는 긴 등쪽 핀을 추가하여 고질적인 방향 안정성 문제를 해결, 기동성을 향상시켰다.

1942년 6월에는 969kW 킨세이 54형 엔진을 탑재한 D3A2 ('''12형''')가 테스트되었다. 이 모델은 늘어난 출력으로 인해 항속거리가 감소하여, 연료 탱크를 추가하여 총 용량을 900L으로 늘려 솔로몬 제도 상공에서 작전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 기종은 해군에서 '''22형'''으로 불렸으며, 1942년 가을부터 11형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2. 4. 11형 및 22형

1939년 12월, 일본 해군은 이 항공기를 '''해군 99식 함상 폭격기 11형''' (艦上爆撃機|간조 바쿠게키일본어, 일반적으로 艦爆 ''칸바쿠''로 약칭)으로 주문했다.[7] 생산 모델은 약간 더 작은 날개를 특징으로 했고 킨세이 43형(746kW) 또는 킨세이 44형(798kW) 엔진을 장착하여 출력이 증가했다. 방향 안정성 문제는 후방 동체 중간에서 시작하는 긴 등쪽 핀 스트레이크를 장착하여 마침내 해결되었고, 항공기는 실제로 기동성이 뛰어나게 되었다.

1942년 6월, 킨세이 54형(969kW)으로 구동되는 D3A1의 개선된 버전이 테스트되었고 D3A2 또는 '''12형'''으로 지정되었다. 추가적인 출력으로 인해 항속거리가 감소했으므로, 추가 연료 탱크를 사용하여 총 탱크 용량을 늘려 솔로몬 제도 상공에서 효과적으로 싸울 수 있는 항속거리를 확보하도록 설계를 추가로 수정했다. 해군에 '''22형'''으로 알려진 이 기종은 1943년 가을에 11형을 전선 부대에서 대체하기 시작했으며, 대부분의 11형은 훈련 부대로 보내졌다. D3A1의 일부 후기 생산 모델에는 프로펠러 스피너가 장착되었지만, D3A2에서는 표준이 되었다.

1943년 1월 7일, '''99식 함상 폭격기 22형'''(D3A2)으로 정식 채용되었다. 22형은 엔진을 금성 54형(1300 hp)으로 교체하고, 이에 따른 엔진 카울의 형상 변경, 프로펠러 스피너 추가, 후부 가동식 풍방 연장, 스윙 암 구조 변경, 수평 꼬리 날개 구조 변경 등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개조를 통해 속도 성능과 상승력은 향상되었지만, 항속 성능은 저하되었다.

생산은 1939년부터 시작되었으며, 아이치에서 11형(증가 시제기를 포함), 22형이 생산되었다. 이 외에도 쇼와 항공기에서도 배기관을 추력식 단일 배기관으로 한 22형 후기 생산형이 생산되었다.

2. 5. 파생형

99식 함상폭격기(D3A)는 여러 파생형이 존재한다. 22형의 일부는 후방 좌석에 조종 장치를 부착하여 연습기로 개조되었는데, 이 기체들은 '''가칭 99식 연습용 폭격기'''(D3A2-K)라고 불렸다. 또한, 기체를 전부 목재로 제작한 명성(D3Y)은 종전 시에 테스트 중이었다.

3. 제원

99식 함상폭격기는 11형과 22형 두 가지 주요 형식이 있다. 두 형식의 제원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18]

99식 함상폭격기 11형과 22형 제원 비교[18]
정식 명칭99식 함상폭격기 11형99식 함상폭격기 22형
기호D3A1D3A2
전체 길이10.185m10.231m
전체 폭14.36m
전체 높이3.348m
날개 면적34.97m2
자중2390kg2750kg
전비 중량3650kg3800kg
엔진긴세이 44형긴세이 54형
출력이륙 시 1,070마력이륙 시 1,300마력
최대 속도381.5 km/h (고도 2300m)427.8 km/h (고도 5650m)
실용 상승 한도8070m10500m
항속 거리1472km1050km
무장기수 고정: 7.7mm × 2, 후방 선회: 7.7mm × 1
폭장250kg × 1, 60kg × 2
승무원2명



22형은 11형에 비해 엔진 출력이 향상되어 최대 속도와 상승 한도가 높아졌지만, 항속 거리는 짧아졌다.

99식 함상폭격기 11형 3면도

3. 1. 11형 (D3A1)

99식 함상폭격기 11형(D3A1)은 아이치 항공기에서 제작되었으며, 1939년(쇼와 14년) 12월 16일에 일본 제국 해군에 정식 채용되었다.[7] 1942년(쇼와 17년) 4월 7일에는 병기 호칭이 99식 함상 폭격기 11형으로 개정되었다.[7]

11형은 독일하인켈 He 70을 참고하여 전금속제, 고정식 다리, 주익 양쪽 아래에 급강하 제동 브레이크판(다이브 브레이크)을 배치하고, 주익은 저익식을 채용, 주익·미익의 끝을 타원형으로 설계하였다.[7] 개발 초기에는 날개 끝 실속으로 인한 불안정한 기동 문제가 있었으나, 주익의 비틀림 감소와 수직 미익 전방 날개[7]를 추가하여 해결하였다.

99식 함상폭격기 11형 제원[18]
항목내용
전체 길이10.185 m
전체 폭14.360 m
전체 높이3.348 m
날개 면적34.970 m2
자중2,390 kg
전비 중량3,650 kg
엔진긴세이 44형
출력이륙 시 1,070마력
최대 속도381.5 km/h (고도 2,300 m)
실용 상승 한도8,070 m
항속 거리1,472 km
무장기수 고정: 7.7mm × 2, 후방 선회: 7.7mm × 1
폭장250 kg × 1, 60 kg × 2
승무원2명


3. 2. 22형 (D3A2)

99식 함상폭격기 22형(D3A2)은 11형을 개량한 기종이다. 22형은 미쓰비시 킨세이 54형 공랭식 성형 엔진(1,300마력)을 탑재하여 출력이 향상되었다.[18] 엔진 변경으로 인해 이륙 시 출력은 1,070마력에서 1,300마력으로 증가했다.[18]

최대 속도는 고도 5,650m에서 427.8kmh로, 11형의 381.5kmh(고도 2,300m)보다 빨라졌다.[18] 실용 상승 한도는 10500m로 11형의 8070m보다 높아졌다.[18] 반면, 항속 거리는 1050km로 11형의 1472km보다 짧아졌다.[18]

자체 중량은 2750kg, 전비 중량은 3800kg으로 11형(자체 중량 2390kg, 전비 중량 3650kg)보다 무거워졌다.[18] 무장은 11형과 동일하게 기수에 7.7mm 기관총 2정, 후방석에 7.7mm 기관총 1정을 장착하고, 동체 하부에 250kg 폭탄 1발 또는 주익에 60kg 폭탄 2발을 탑재할 수 있다.[18]

다음은 11형과 22형의 제원을 비교한 표이다.

''출처: 세계의 걸작기''[18]
정식 명칭99식 함상폭격기 11형99식 함상폭격기 22형
기호D3A1D3A2
전체 길이10.185m10.231m
전체 폭14.36m
전체 높이3.348m
날개 면적34.97m2
자중2390kg2750kg
전비 중량3650kg3800kg
엔진긴세이 44형긴세이 54형
출력이륙 시 1,070마력이륙 시 1,300마력
최대 속도381.5kmh (고도 2300m)427.8kmh (고도 5650m)
실용 상승 한도8070m10500m
항속 거리1472km1050km
무장기수 고정: 7.7mm × 2, 후방 선회: 7.7mm × 1
폭장250kg × 1, 60kg × 2
승무원2명


4. 장비

99식 함상폭격기는 조종사석과 관측수석에 각각 조준경, 드리프트 시트, 표류 미터, 무전기, 나침반 등 다양한 장비를 탑재했다. 기수와 후방석에는 기관총과 92식 기관총을, 동체와 날개 아래에는 폭탄을 장착했다.[1][2] 기체 도색은 초기 은색에서 밝은 올리브 회색, 짙은 녹색으로 변경되었다.[2]

4. 1. 조준 장비

조종사석에는 초기 모델에 95식 망원 조준기가, 후기 모델에는 99식 조준기가 장착되어 급강하 시 폭탄 조준에 사용되었다. 관측수/항법사석에는 97식 1형 드리프트 시트(관측수 좌석 왼쪽 앞에 위치한 긴 수직 튜브)가 있었다. 관측수 좌석 오른쪽 앞바닥에는 표류 미터가 장착되었다. 관측수는 관측수 좌석 앞과 조종사 좌석 뒤에 장착된 96식 2형 무전기 세트를 조작했으며, 무전기 세트 상단에는 정밀 항법을 위한 3식 반사 나침반이 있었다.[1]

4. 2. 통신 장비

관측수는 조종사 좌석 뒤와 관측수 좌석 앞에 장착된 96식 2형 무전기 세트를 조작했다. 무전기 세트 위에는 정밀 항법을 위한 3식 반사 나침반이 있었다.[1]

4. 3. 무장

99식 함상폭격기는 2정의 전방 고정 7.7mm 97식 기관총과 조종석 후미에서 관측수가 조작하는 1정의 가동식 7.7mm 92식 기관총으로 무장했다.[1][2] 일반적인 폭탄 탑재량은 동체 아래에 장착된 250kg 99식 25호 반철갑탄 또는 98식 25호 육상 폭탄 1개로, 투하 시 프로펠러 아래로 튕겨져 나갔다. 급강하 브레이크 바깥쪽 날개 아래 랙에는 60kg 99식 6호 반철갑탄 또는 2식 6호 육상 폭탄 2개를 추가로 장착할 수 있었다.[1][2]

5. 실전 기록

99식 함상폭격기는 중일 전쟁태평양 전쟁에서 일본 해군의 주력 급강하 폭격기로 활약했다. 특히 태평양 전쟁 초기에는 높은 명중률을 바탕으로 연합군 함대에 큰 피해를 입혔다.

99식 함폭은 진주만 공격에서 함선 공격에 78기가 참가, 47.7%의 명중률을 기록했다. 이후 남방 작전에서 포트다윈 공습(46척 중 21척 격침, 2척 대파), 칠라차프 공격, 크리스마스 섬 부근에서 급유함 페코스 및 구축함 에드솔 격침 등 전과를 올렸다.

전쟁 기간 동안, 99식 함상폭격기는 종종 나카지마 B5N ''케이트'' 뇌격기와 함께 적 군함을 공격하여 폭탄과 어뢰 조합 공격으로 침몰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단독 공격으로 격침시킨 경우도 있었다. 다음은 99식 함상폭격기가 단독으로 격침시킨 연합군 군함 목록이다(부분 목록):[1]

함선 종류함선 이름격침 날짜 및 장소
구축함Peary1942년 2월 19일, 오스트레일리아 (다윈)
구축함Pope1942년 3월 1일, 자바 해
구축함Edsall1942년 3월 1일, 인도양
유조선Pecos1942년 3월 1일, 인도양
중순양함Cornwall1942년 4월 5일, 인도양
중순양함Dorsetshire1942년 4월 5일, 인도양
무장 상선Hector1942년 4월 5일, 인도양
구축함Tenedos1942년 4월 5일, 인도양
항공모함Hermes1942년 4월 9일, 인도양
로열 플릿 보조함Athelstone1942년 4월 9일, 인도양
코르벳함HMS Hollyhock1942년 4월 9일, 인도양
유조선SS British Sergeant1942년 4월 9일, 인도양
화물선SS Norviken1942년 4월 9일, 인도양
구축함Vampire1942년 4월 9일, 인도양
구축함Sims1942년 5월 7일, 태평양
구축함De Haven1943년 2월 1일, 태평양 (아이언바텀 사운드)
구축함Aaron Ward1943년 4월 7일, 태평양 (아이언바텀 사운드)
유조선Kanawha1943년 4월 8일, 태평양 (툴라기, 솔로몬 제도)
구축함Brownson1943년 12월 26일, 태평양
구축함Abner Read1944년 11월 1일, 태평양 (가미카제)
구축함William D. Porter1945년 6월 10일, 일본 (오키나와, 가미카제)



"이"호 작전 이후부터는 99식 함폭대가 육상 기지에서 주로 작전을 수행했다. 과달카날 섬 방면 작전, 오로 만 공격, 밀른 만 전투 등에 투입되어 다수의 수송선을 격파·격침했지만, 21기를 잃었다.

99식 함폭의 항공모함에서의 작전 참여는 마리아나 해전으로 종료되었다. 1944년 6월 19일과 20일에 있었던 이 해전에서 99식 함폭은 총 38기가 배치되어 있었다. 6월 19일의 2차 공격에서 99식 함폭 27기 등이 출격했으나, F6F 헬캣의 습격으로 99식 함폭 9기 등을 손실했다.

이후 필리핀 섬 결전과 오키나와 결전에서는 주로 특공기로 사용되었다. 필리핀 섬 결전에서 99식 함폭 20기가 특공으로 돌입, 상선 1척과 경순양함 덴버를 손상시키고 구축함 아브너 리드를 격침시켰다. 오키나와 결전에서는 총 103기가 특공으로 돌입, 구축함 투익스 (손상), 리틀 (침몰), 애런 워드 (대파) 등의 전과를 올렸다.

99식 함상폭격기는 조종사가 아닌 상위 계급의 관측병이 지휘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는 조종사가 거의 항상 급강하 폭격기의 지휘관이었던 미국 해군과는 대조적이었다. 예를 들어 일등병조 후루타 키요토는 진주만 공격 당시 해군 중위 치하야 타케히코의 조종사였고, 이후 솔로몬 제도 전역의 두 차례 항공모함 전투에서 아리마 게이이치 중위의 조종사로 복무했는데, 두 사람 모두 관측병이었다.[1]

5. 1. 중일 전쟁

1939년 11월, 99식 함상폭격기(D3A1)는 해군에 정식으로 채택되기 한 달 전에 처음으로 실전에 투입되었다. 나카지마는 중국 하이난 섬의 하이커우에서 작전 중이던 제14항공대에 몇 대의 99식 함상폭격기를 보냈다. 이들은 다카하시 사다무 해군 중위의 지휘를 받았으며,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로부터의 보급을 차단하기 위한 난닝 전투에서 일본 제국 육군을 지원했다. 난닝 점령 후, 1940년에도 이 지역에서 계속 작전을 수행했다.[1]

1940년 5월, 제12 항공대는 99식 함상폭격기(D3A1)를 장비한 두 번째 최전선 부대가 되었다. 이들은 자오양-이창 전투에 참여하여 충칭으로부터 오는 중국 국민혁명군의 보급품을 차단하기 위해 이창 서쪽의 양쯔 강에서 대선박 작전을 수행했다. 9월, 제12항공대의 99식 함상폭격기는 당시 중국의 수도였던 충칭 폭격 임무를 시작했다. 1940년 가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침공 이후, 제14항공대는 하노이에서 작전하며 쿤밍과 버마 로드를 공격하는 임무를 수행했다.[1]

5. 2. 태평양 전쟁 초기

D3A1은 1940년 항공모함 아카기가가에서 함상 자격 시험을 시작했고, 진주만 공격을 시작으로 전쟁 초기 10개월 동안 일본의 모든 주요 항공모함 작전에 참여했다.[1] 1942년 4월 실론 해전에서 영국 해군을 상대로 첫 번째 주요 성공을 거두었는데, D3A1 함상폭격기는 작전 중 두 척의 중순양함과 항공모함을 공격하는 동안 폭탄 공격으로 80% 이상을 기록했다.[1]

1941년 12월 7일 아침, 아이치 D3A1 급강하 폭격기가 일본 항공모함에서 이륙하여 진주만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


인도양 습격 전에는 함선 공격에 대한 확립된 교리는 모든 D3A1 급강하 폭격기에 반-장갑 폭탄을 장착하는 것이었다. 1942년 4월 5일, 일본 해군 항공모함 부대는 함대의 절반으로 실론의 콜롬보를 공격했고, 나머지 절반은 함선 공격을 위해 예비로 유지되었다. 콜롬보에 대한 두 번째 공격이 필요하다고 판단됨에 따라, 예비 부대의 급강하 폭격기는 반-장갑 폭탄에서 육상 폭탄으로 재무장되었다. 그 후 곧 영국 중순양함이 발견되자, 예비 부대는 육상 폭탄을 장착한 일부 D3A1 급강하 폭격기와 함께 출격했다. 이어진 공격에서 육상 폭탄은 의도치 않게 함선으로부터의 대공포화를 억제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그 결과, 교리는 처음 몇 대의 D3A1 급강하 폭격기에 의도적으로 육상 폭탄을 장착하도록 수정되었다. 이 새로운 방법은 불과 4일 후 영국 항공모함 를 침몰시킨 공격에 이미 적용되었으며, 그 이후로 계속 사용되었다.[1]

99식 함폭은 0식 함상 전투기・97식 함상 공격기와 함께 태평양 전쟁 전기의 일본 해군의 쾌진격을 뒷받침했으며, 진주만 공격이나 실론 해전 등에서 높은 급강하 폭격 명중률을 보였다. 하와이 해전에서 99식 함폭은 78기가 함선 공격에 참가해 78발을 투탄했고, 이 중 명중 확실한 것은 47.7%로 산정되었다. 미국 측 판정에 따른 250 kg 폭탄의 명중 상황은 다음과 같다.

함선 종류함선 이름명중탄 수
전함네바다6발 이상
전함메릴랜드1발
전함펜실베이니아1발
경순양함헬레나1발
경순양함롤리1발
구축함카신1발
구축함다운즈1발
구축함1발



실론 해전에서도 높은 폭격 명중률을 보여 1942년 4월 5일 영국 해군 중순양함 콘월과 도셋셔를 공격 개시 20분도 안 되어 격침했다. 공격에 참가한 99식 함폭은 아카기, 소류, 히류에서 발진한 53기이다. 같은 달 9일, 바티칼로아 부근에서 영국 항공모함 허미즈와 영국 구축함 뱀파이어, 영국 코르벳 홀리호크, 영국 급유선 아셀스톤, 영국 상선 British Sergeant가 아카기, 소류, 히류, 쇼카쿠, 즈이카쿠에서 발함한 99식 함폭 85기에 의한 공격으로 격침되었다.[12] 허미즈는 45기에게 폭격을 받아 폭탄 37발을 피탄, 평균 명중률은 82%이다.

1942년 동안, D3A1 폭격기와 D3A2 폭격기는 산호해 해전에서 렉싱턴, 미드웨이 해전에서 요크타운, 산타크루즈 제도 해전에서 호넷 등 미국 함대의 항공모함 3척을 격침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1]

5. 3. 태평양 전쟁 중기

1942년, D3A1 및 D3A2 폭격기는 산호해 해전에서 렉싱턴, 미드웨이 해전에서 요크타운, 산타크루즈 제도 해전에서 호넷 등 3척의 미국 함대 항공모함을 침몰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1] 또한, 동부 솔로몬 해전과 산타크루즈 제도 해전에서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에 피해를 입혔다.[1] 항공모함 부대 외에도 D3A 급강하 폭격기는 과달카날 전역, 이 작전, SE 작전 및 RO 작전에 참여한 솔로몬 제도 전역과 밀른 만 전투 및 부나-고나 전투에 참여한 뉴기니 전역에서 육상 기지 작전을 수행했다. 이 전역에서 D3A 급강하 폭격기를 운용한 주요 육상 기지 부대는 제2/582 항공대였다.[1]

산호해 해전에서 일본 해군의 쇼카쿠와 즈이카쿠 함폭대는 1942년 5월 7일, 미 구축함 심스를 격침하고 급유함 네오쇼를 격파했다. 5월 8일에는 33기의 99식 함폭이 미 항공모함 렉싱턴에 250kg 폭탄 2발, 요크타운에 1발을 명중시켜 렉싱턴을 대파시키고 미군에 의해 뇌격 처분되었다. 일본 함폭대는 9기를 손실했다.

미드웨이 해전에서는 일본 해군의 아카기, 카가, 소류가 침몰하는 가운데 히류가 반격하여 요크타운을 대파시켰다. 1차 공격에 99식 함폭 18기가 참가하여 250kg 폭탄 3발을 명중시켰으나 13기를 잃었다. 2차 공격(97식 함공 10기)에서 어뢰 2발이 명중했고, 요크타운은 다음날 일본 잠수함 이168의 뇌격으로 침몰했다.

1942년 8월 24일 제2차 솔로몬 해전에서 쇼카쿠와 즈이카쿠의 함폭대는 미 해군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를 공격, 27기의 99식 함폭이 급강하 폭격하여 3발을 명중시켰다. 엔터프라이즈는 중파되어 후퇴했지만, 일본 함폭대는 23기를 손실했다.

제2차 솔로몬 해전에서 쇼카쿠 함재기


남태평양 해전에서는 1942년 10월 26일, 즈이카쿠 함폭대 21기가 미 해군 항공모함 호넷에 5발을 명중시켰다. 쇼카쿠 함폭대 19기는 엔터프라이즈에 3발을 명중시켰고, 준요 함폭대 17기는 경순양함 샌프란시스코와 전함 사우스다코타에 1발씩 명중시켰다. 표류하던 호넷은 일본 구축함 아키구모와 마키구모에 의해 뇌격 처분되었다. 일본 함폭대는 40기를 손실했다.

5. 4. 태평양 전쟁 후기

1942년, D3A1 및 D3A2 폭격기는 산호해 해전에서 렉싱턴, 미드웨이 해전에서 요크타운, 산타크루즈 제도 해전에서 호넷 등 미국 함대의 항공모함 3척을 격침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1] 동부 솔로몬 해전과 산타크루즈 제도 해전에서는 엔터프라이즈에 피해를 입혔다. 항공모함 기반 부대 외에도 D3A 급강하 폭격기는 과달카날 전역, 이호 작전, SE 작전, RO 작전 등 솔로몬 제도 전역과 뉴기니 전역에서 운용되었다. 이 작전들에서 D3A 급강하 폭격기를 운용한 주요 육상 부대는 제2/582항공단이었다.[1]

전황이 진행됨에 따라, D3A 급강하 폭격기는 요격기 역할의 전투기로도 투입되었는데, 기동성이 뛰어나 이 역할에서도 생존할 수 있었다. 요코스카 D4Y가 실전 배치되자, D3A2는 지상 기반 부대나 소형 항공모함에서 운용되었는데, 이는 D4Y의 빠른 착륙 속도를 감당하기에는 너무 작았기 때문이다. 1944년 미군이 필리핀을 탈환할 때, 지상 기반 D3A2는 전투에 참여했지만, 구식화되어 큰 손실을 입었다. 당시 많은 D3A1과 D3A2는 일본 훈련 부대에서 운용되었고, 일부는 해군 99식 폭격기 훈련기 12형(D3A2-K)으로 개조되어 이중 조종 장치를 갖추었다. 전쟁 마지막 해에 D3A2는 가미카제 임무에 다시 투입되었다.[1]

6. 평가

99식 함상폭격기는 태평양 전쟁 초기에 일본군의 주력 함상폭격기로 활약했지만, 전쟁이 진행되면서 점차 한계를 드러냈다.

미국 해군의 SBD 돈틀리스는 99식 함상폭격기보다 더 빠른 속도와 우수한 방탄 성능을 갖추고 있었다.[13] 일본은 99식 함폭을 대체할 혜성을 개발했지만, 생산과 배치에 어려움을 겪었다. 혜성은 액랭 엔진의 복잡성으로 인해 생산이 지연되었고, 전선에서의 정비 효율도 떨어졌다. 또한, 일본 해군의 정규 항공모함이 감소하면서 소형 항공모함에서는 혜성을 운용하기 어려웠다.[13]

결국 일본 해군은 구식화된 99식 함폭을 계속 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미군은 신예 전투기 F6F를 대량 투입하고 근접 신관(VT 신관)을 개발하여 99식 함폭에 큰 피해를 입혔다. 99식 함폭은 "99식 관짝(칸바코)" 또는 "궁궁식 함폭"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낮은 생존성을 보였다.[13]

1944년 필리핀 전역과 오키나와 전역에서 많은 99식 함폭이 특공에 동원되었다.[16][17] 99식 함폭은 태평양 전쟁 초기에 항공 결전 사상의 유용성을 입증하며 일본군의 승리에 기여했지만, 전쟁 말기에는 기술적 한계와 전황 악화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6. 1. 긍정적 측면

99식 함상폭격기는 태평양 전쟁 초기에 일본군의 주요 항공 전력으로서 활약하며 여러 긍정적인 측면을 보였다.

우선, 하와이 해전(진주만 공격)에서 99식 함폭은 미국 해군의 태평양 함대를 거의 일방적으로 격파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13] 이를 통해 일본군은 남방 진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 동남아시아 각지의 연합군 거점을 성공적으로 공습하여 신속한 진격을 이끌어냈다.

99식 함폭은 뛰어난 급강하 폭격 능력을 바탕으로, 사상 최초의 항공모함 간 해전에서 미국 해군 항공모함 부대에 큰 타격을 입혔다.[13] 이는 당시 일본 해군이 항공모함을 중심으로 한 항공 결전 사상의 유용성을 입증하는 사례로 평가받는다.

6. 2. 부정적 측면

99식 함상폭격기는 태평양 전쟁 초기에 활약했지만, 전쟁이 진행되면서 점차 구식화되었다. 미국 해군의 SBD 돈틀리스 급강하 폭격기는 99식 함상폭격기보다 속도가 빠르고 방탄 장갑이 장착되어 생존율이 높았다.[13]

일본 해군은 99식 함상폭격기를 대체하기 위해 혜성을 개발했지만, 생산 지연과 정비 효율 문제로 인해 충분한 수를 확보하지 못했다. 결국 99식 함상폭격기는 계속 운용되었지만, 미군의 신예 전투기와 근접 신관 (VT 신관)의 등장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다. 저속에 방탄 장갑도 빈약했던 99식 함상폭격기는 "99식 관짝(칸바코)" 또는 "궁궁식 함폭"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생존성이 낮았다.[13]

1944년 필리핀 전역과 오키나와 전역에서 많은 99식 함상폭격기가 특공에 사용되었다.[16][17]

7. 운용 국가

8. 현존 기체

미국 캘리포니아주 치노에 위치한 명예의 비행기 박물관에서 99식 함상폭격기(D3A2) 1대를 복원 작업 중에 있다.[2][3] 복원되지 않은 D3A 2대는 미국 텍사스주 프레데릭스버그에 있는 태평양 전쟁 국립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4][5] 2022년, 진주만 항공 박물관은 전시를 위해 파푸아뉴기니에서 D3A 잔해를 획득하기 시작했다.

기종기체 사진소재지보존 시설/관리자공개 상황상태기체 번호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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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텍사스주
태평양 전쟁 국립 박물관공개정적 전시동체: 제조 번호 3105
미익 부분: 제조 번호 3357, 미익 번호 58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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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주
명예의 비행기 박물관공개수리 중제조 번호 3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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괌 태평양 전쟁 박물관공개정적 전시불명미익, 엔진만


9. 대중문화 속 99식 함상폭격기


  •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이오 섬의 비행장에 몇 대가 주기되어 있다.
  • 도라! 도라! 도라! : 촬영에는 벌티 BT-13 밸리언트의 개조기가 사용되었다.
  • 진주만: 촬영에는 영화 도라! 도라! 도라!에서 사용된 개조기가 다시 사용되었다.
  • 영원의 제로
  • 예광탄 회랑 (격전만화 시리즈)
  • 88함대 이야기: 외전 「강철의 가루다」에 등장한다. Ju 87 슈투카를 본떠, 대지·대전차 공격용으로, 기체 하부에 40mm 기총을 탑재한 가상의 「22형 을」이 작중에 등장한다.
  • 레이테 맹진 1 역습의 기동부대: 마리아나 해전에 제2항공전대 소속기로서 참가하고 있으며, 히요, 준요, 류호에서 총 27기가 발함한다.
  • War Thunder
  • 푸른 영웅 Birds of Steel
  • 칸코레 - 칸타이 컬렉션 -: 함상 폭격기 카테고리의 함재기 장비로 등장한다. 11형이 모델인 통상기 외에도 99식 함폭(숙련), 99식 함폭(에구사대), 99식 함폭 22형, 99식 함폭 22형(숙련)이 등장한다.
  • 벽람항로: 중앵의 폭격기로 99식 함폭이 등장한다.
  • 배틀필드 1942: 일본군공격기로 기체에 '보국-303'이라고 적힌 것이 등장한다.

참조

[1] 웹사이트 Leonard Birchall and the Japanese Raid on Colombo http://www.journal.f[...] 2006
[2] 웹사이트 Restoration Projects http://planesoffame.[...] 2022-01-06
[3] 웹사이트 D3A2 Model 22 Val Manufacture Number 3178 http://pacificwrecks[...] 2020-09-17
[4] 웹사이트 D3A2 Model 22 Val Manufacture Number 3357 Tail 582–248 http://www.pacificwr[...] Pacific Wrecks Inc. 2016-08-19
[5] 웹사이트 D3A2 Model 22 Val Manufacture Number 3105 http://www.pacificwr[...] Pacific Wrecks Inc. 2016-08-19
[6] 서적 日本航空機総集 愛知・空技廠篇 出版協同社 1959
[7] 간행물 海軍 九九式艦上爆撃機 학습연구사 2010-02
[8] 문서 天空拳、204-206頁
[9] 문서 天空拳、213-215頁
[10] 문서 天空拳、216頁
[11] 문서 天空拳、217頁
[12] 문서 天空拳、226頁
[13] 문서 艦爆隊長、157頁
[14] 문서 艦爆隊長、168頁
[15] 문서 艦爆隊長、169頁
[16] 문서
[17] 서적 空母艦爆隊 光人社
[18] 서적 世界の傑作機 九九式艦上爆撃機 文林堂
[19]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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